본문 바로가기
IT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AI)

by 비준 2022. 9. 24.

인공지능 (Ariticial Intelligence, AI)

인공지능 또는 아티피셜 인텔리전스 (Ariticial Intelligence, AI)은 인간의 학습능력, 추론 능력, 지각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려는 컴퓨터 과학의 세부 분야 중 하나이다. 정보공학분야에 있어 하나의 인프라 기술이기도 하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갖고 있는 지능, 즉 Natural Intelligence와는 다른 개념이다.

 

인공지능의 종류

인공지능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 강인공지능 (범용 인공지능)

강한 인공지능은 어떤 문제를 실제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컴퓨터 기반의 인공적인 지능을 만들어 내는 것에 관한 어떤 면에서 보면 지능적인 행동을 보인다. 오늘날 이 분야의 연구는 주로 미리 정의된 규칙의 모음을 이용해서 지능을 흉내 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 약인공지능 (Weak AI)

약한 인공지능은 사진에서 물체를 찾거나 소리를 듣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 같이 기존에 인간은 쉽게 해결할 수 있으나 컴퓨터로 처리하기에는 어려웠던 각종 문제를 컴퓨터로 수행하게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참 막연한 인간 지능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실용적인 목표를 가지고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능을 가진 무언가라기보다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역사

- 인공지능 이론의 발전

상당수의 인공지능 연구의 목적인 심리학에 대한 실험적인 접근이었고, 언어 지능 (linguistic Intelligence)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주목표였다.

 

- 인공지능의 탄생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 수학, 철학, 공학,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과학자들에게서 인공적인 두뇌의 가능성이 논의되었다. 1956년에 이르러서, 인공지능이 학문 분야로 들어섰다.

 

 > 인공두뇌학과 초기 신경 네트워크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초기 연구는 30년대 후기에서부터 50년대 초기의 유행한 아이디어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당시 신경학의 최신 연구는 실제 뇌가 뉴런으로 이루어진 전기적인 네트워크라고 보았다. 위너가 인공두뇌학을 전기적 네트워크의 제어와 안정화로 묘사했으며, 섀넌의 정보 과학은 디지털 신호로 묘사했다. 또 튜링의 계산이론은 어떤 형태의 계산도 디지털로 나타낼 수 있음으로 보였다. 이런 여러 밀접한 연관에서 인공두뇌의 전자적 구축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윌터 피츠 (Walter Pitts)와 워런 매컬러 (Warren Sturgis McCulloch)은 신경 네트워크라 부르는 기술을 첫 번째로 연구한 사람이다.

 

> 튜링 테스트

1950년 앨런 튜닝은 생각하는 기계를 구현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담긴, 인공지능 역사에서 혁혁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생각"을 정의하기 어려움에 주목해 그 유명한 튜링 테스트를 고안하였다. 텔러프린터를 통한 대화에서 기계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를 잘 이끌어 간다면 이것은 기계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에 대한 최초의 심도 깊은 철학적인 계산이다.

 

> 게임 인공지능

1951년에 맨체스터 대학의 페란티 마크 1 (Ferranti Mark 1) 기계를 사용하여 크리스토퍼 스트레이 (Christopher Strachey)는 체커 프로그램을 작성했고 디트리히 프린츠 (Dietrich Prinz)는 체스 프로그램을 작성하였다.

 

> 상징 추론과 논리 이론

디지털 컴퓨터에 접할 수 있어진 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몇몇 과학자들은 직관적으로 기계가 수를 다루듯 기호를 다루고 사람처럼 기호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었다. 1956년에 앨런 뉴얼 (Allen Newell)과 허버트 사이먼 (Herbert A. Simon)은 "논리 이론"을 구현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에 나오는 52개의 정리 중 32개를 증명해냈다.

 

> 다트머스 컨퍼런스 1956년 : AI의 탄생

1956년에 열린 다트머스 컨퍼런스는 마빈 민스키와 존 매카시, 그리고 IBM의 수석 과학자인 클로드 섀넌과 네이선 로체스터 (Nathan Rochester)가 개최했다. 컨퍼런스는 "학습의 모든 면 또는 지능의 다른 모든 특성으로 기계를 정밀하게 기술할 수 있고 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포함하여 제안을 제기했다. 컨퍼런스에서 뉴얼과 사이먼은 "논리 이론"을 소개했다 1956년 컨퍼런스는 AI라는 이름, 목표점, 첫번째 성공과 이를 이룬 사람들, 그리고 넓은 의미의 AI의 탄생을 포함하는 순간이었다.

 

- 황금기 (1956년 ~ 1974년)

다트머스 컨퍼런스 이후에 AI라는 새로운 영역은 발전을 땅을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프로그램은 대수학 문제를 풀었고 기하학의 정리를 증명하였으며, 영어를 학습하였다. 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같은 정부 기관은 이 새로운 분야에 돈을 쏟아부었다.

 

 > 탐색 추리

초기 AI 프로그램은 동일한 기본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하였다. 게임의 승리나 정리 증명 같은 어떤 목표에 달성을 위해 그들은 한 발짝씩 나아가는 (Step-By-Step) 방식을 상용화하였다. 이런 방식은 "탐색 추리"라고 불렸다. 연구가들은 추론 또는 경험적으로 찾은 규칙으로 정답이 아닌 듯 보이는 경로를 지우는 방식을 사용했다 뉴엘과 사미언은 "범용 문제 해결기 (General Problem Solver)"라 부르는 프로그램 속 알고리즘의 범용적인 버전을 포착하려고 노력하였다.

 

> 자연어 처리

AI의 연구의 중요한 목표는 영어와 같은 자연어로 컴퓨터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찍이 다니엘 보로우 (Daniel Bobrow)의 STUDENT라는 프로그램은 고등학교 수준의 대수학 단어 문제를 푸는 데 성공하였다. '의미 망'은 개념을 다른 개념들 사이의 노드와 링크 관계로 나타낸다. 의미망을 사용하는 첫 번째 AI 프로그램은 로스 퀄리언 (Ross Quillian)이 작성하였고 가장 성공하였으며, 동시에 논쟁이 많았던 버전은 로거 섕크 (Roger Schank)의 "개념 종속 이론 (Conceptual Dependency Theory)"이다. 조셉 웨이젠바움 (Joseph Weizenbaum)의 ELIZA는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를 나누는 때때로 상대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질을 높였다. 이를 통해 ELIZA는 첫 번째 채팅 프로그램이 되었다.

 

> 마이크로월드

1960년대 후반에 MIT의 AI 연구소에 있던 마빈 민스키와 시모에 페퍼트는 마이크로월드 연구라 불리는 인위적인 간단한 상황에 초점을 맞춘 AI 연구를 제안하였다. 제라드 서스먼 (Gerald Sussman)을 필두로 아돌프 구즈먼 (Adolfo Guzman), 다비드 왈츠 (David Waltz) 그리고 패트릭 윈스턴 (Patrick Winston)이 마이크로월드 패러다임으로 기계 비전의 혁신을 이끌었다.

 

> 낙관론

AI 연구의 첫 번째 세대는 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예측하였다.

 -> 1958년 사이먼 (H.A Simon)과 뉴얼 (Allen Newell) : 10년 내 디지털 컴퓨터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길 것이다 또한 10년 내 디지털 컴퓨터는 중요한 새로운 수학적 정의를 발견하고 증명할 것이다.

 -> 1956년 사이먼 : 20년 내에 기계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 1967년 바빈 민스키 : 이번 세기에 AI를 만드는 문제는 거의 해결될 것이다.

 -> 1970년 마빈 민스키 : 3 ~ 8년 안에 우리는 평균 정도의 인간 지능을 가진 기계를 가질 것이다.

 

위의 낙관론으로 인해 AI의 연구는 자금을 많이 지원받았다 1963년 6월 MIT는 220만 달러를 고등 연구 계획국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 후에 DARPA)에게 제공받았다. DARPA는 계속해서 매년 300만 달러는 70년대까지 제공하였다.

 

- AI의 첫 번째 암흑기 (1974년 ~ 1980년)

70년대에 이르자 AI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재정적 위기가 닥쳤다. AI 연구가들은 그들의 눈앞에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하였다. 연구가들은 엄청난 낙관론은 연구에 대한 기대를 매우 높여놓았고 그들이 약속했던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자  AI에 대한 자금 투자는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Connectionism 또는 뉴럴 망은 지난 10년 동안 마빈 빈스키의 퍼셉트론 (시각과 뇌의 기능을 모델화한 학습 기계)에 대한 파괴적인 비판에 의해 완전히 중지되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의 AI의 좋지 않은 대중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논리 프로그래밍, 상징 추론과 같은 많은 여러 영역에서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타났다.

 

 > 문제

1970년대 초 AI 프로그램의 가능성은 제한적이었다. 모든 문제에 걸쳐서 문제를 푸는 인상 깊은 작품들은 겨우 시험용 버전 정도였고 어떤 의미에선 '장난감'에 가까웠다. AI 연구는 70년대에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는 몇 개의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몇 개의 한계는 10여 년 후에 극복이 되었지만 몇몇 개는 오늘날까지 극복되지 못하였다.

 근본적인 한계는 다음과 같다.

 

 -> 컴퓨터 처리 능력의 한계 : 메모리 또는 처리 속도가 충분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로스 퀼리언 (Ross Quillian)의 자연어 처리에서 성공적인 완수는 오직 20개의 단어 위에서 발휘되었는데 이것은 메모리가 꽉 찼기 때문이었다. 컴퓨터 영상에 대해서 모라벡은 간단하게 계산하여 실시간으로 사람의 망막을 모션 캡처하려면 범용 컴퓨터가 초단 10^9 명령어(1000 MIPS)를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2011년 경 실용적인 컴퓨터 영상 프로그램은 10,000 ~ 1,000,000 MIPS르 요구한다. 1976년경 5백만에서 8백만 달러 사이에 판매되던 가장 빠른 슈퍼 컴퓨터인 Cray-1은 80 ~ 130 MIPS였고 당시 전형적인 데스크톱 컴퓨터는 겨우 1 MIPS남짓정도 되었다.

 

 -> 폭발적인 조합 수와 비용이성 : 1972년 리차트 카프 (Hichard Karp)는 문제 해결에 지수적 시간이 요구되는 많은 문제를 보여주었다. 하찮은 문제일지라도 이런 문제의 최적의 해답을 찾는데 상상할 수 도 없는 컴퓨터의 시간이 요구되었다. 즉, 지금까지 AI '장난감'에 사용되었던 방법은 실제적으로 유용한 AI 시스템을 제작하는데 용이하지 못하였다.

 

 -> 상징적 지식과 추론 : 영상 처리나 자연어 처리 같은 중요한 AI 프로그램은 실제 세상에 대한 간단하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필요한다. 그래야 프로그램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누구도 이런 데이터가 포함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지 못했고, 누구도 이런 데이터를 프로그램 혼자 터득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 모라벡의 패러독스 : 이론을 제작하고 기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컴퓨터에게 비교적 쉽지만 얼굴을 인식하거나 장애물을 피해 방을 가로지르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 프레임 문제, 자격 문제 : 존 맥캐시와 같은 연구가 들은 규칙이 규칙 스스로의 구조를 변경하지 못하면 관련 계획 또는 기본 추론 일반 공제를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 자금 지원의 중단 

영국 정보나 DARPA, NPC 같은 AI 연구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던 기관들은 연구 진행의 부진에 실망하였고 결국 AI의 관한 방향성을 가진 자금 지원을 끊었다, 1966년 기계를 이용한 번역을 비판하는 보고서가 ALPAC에 제출되었을 때부터 이런 흐름이 시작되었다. 총 2천만 달러를 지원한 NRC도 지원을 멈췄다. DARPA는 CMU의 음성을 이해하는 연구의 연구자들에게 심하게 실망하였고 연간 3백만 달러의 지원을 취소하였다.

 

 ->  캠퍼스 전역의 비판들

몇 철학자들은 AI 연구가들에게 강력한 반대를 표했다. 초기 반대자들 중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에 의해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시스템이 실제적으로 정확하게 사람과 같이 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은 존 루카스 (John Lucas)이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Hubert Dreyfus)는 60년대의 깨어진 약속을 조롱했고 AI의 가정을 비판했으며 인간의 추론이 실제적으론 "상징적 진행"이 매우 적게 포함되어 있고 구현적, 본능적, 무의적인 노하우에 의해 처리된다고 주장하였다. 존 설 (John Searle)의 1980년대 제시된 중국인 방 문제는 실제로 프로그램이 상징들을 '이해'할 수 없고 사용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 퍼셉트론과 연결망의 어두운 시대

뉴럴 네트워크 형태의 퍼셉트론이 1958년 마빈 민스키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로센블랫 (Frank Rosenblatt)에 의해 도입되었다. 그는 낙관론을 펼쳤고 "퍼셉트론은 결국 학습하고 의사 결정을 하고, 언어 번역을 할 것이다"라고 예견하였는데 퍼셉트론은 1969년 민스키와 페퍼의 책 퍼셉트론의 출판과 함께 연구가 중지되었다. 퍼셉트론이 할 수 있는 일에 몇 가지 심각한 제한 사항이 있음을 또 프랭크의 예언이 심각하게 과장되어 있음을 알렸다. 이 책의 파급력은 압도적이었다 향후 10년 동안 뉴럴 네트워크에 대한 거의 모든 연구가 중지되었다. 결국 뉴럴 네트워크 영역을 회복할 연구원의 새로운 세대가 그 후에 인공지능의 중요하고 유용한 부분을 내놓았다.

 

- Boom 1980년 ~ 1987년

1980년대에는 전 세계적을 사용된 '전문가 시스템'이라고 일컫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형태였고 인공지능 검색에 초점이 맞췄다. 같은 시기에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와 인공지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였다. 1980년대에 존 홉필드와 데이비스 루멜하트의 신경망 이론의 복원이라는 또 다른 사건이 이 시기에 존재하였다.

 

- AI의 두 번째 암흑기

AI와 비즈니스 커뮤니티의 매력은 상실했고 경제 거품이라는 고전적 형태의 1980년대에 빠졌다. 붕괴는 정부기관과 투자자들의 '해당 분야는 계속해서 비판에도 불구하고 진보해왔다'는 인식에 비롯된 것이었다. 로봇 공학 분야에 관련된 연구원인 Rodney Brooks와 Hans Moravec는 인공지능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을 주장하였다.

 

 -> 인공지능의 겨울

1974년에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열정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가고 이에 대한 실망이 확실히 따라올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고 이때 투자가 끊기고 살아남은 연구원들에 의해서 "AI Winter"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첫 번째 사건은 1987년에 특성화된 AI 하드웨어 시장이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Lisp 기기보다 더 좋은 성능이 가진 하드웨어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최초의 전문가 시스템인 XCON은 유지하기에 너무 비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업데이트하기에도 너무 어려웠고 학습이 되지도 않았다. 1991년에는 1981년에 일본에서 5세대 프로젝트 목표 리스트에 적은 것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 몸통을 갖는 것의 중요성 : Nouvellle AI and embodied reason

1980년대 후반 몇몇의 연구원들이 로봇 공학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에 완전히 새로운 접근 법에 대해 찬성하였다. 그들은 실제 지능을 보여주려면 기계에도 몸통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기계 또한 이 세상에서 인식하고, 이동하고, 살아남고, 거래할 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런 감각 운동 기술은 상징적인 추론과 같은 더 높은 단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선구자인 David Mar은 신경과학을 이론으로 한 그룹의 비전을 이끌어 성공적인 배경으로 1970년대에 MIT에 들어왔다. 그는 모든 상식적인 접근법 (McCarthy's Logic and Minsky's Frames)을 거절하였고 AI는 시각에 대한 육체적인 기계 장치를 심볼릭 프로세싱하기 전에 가장 바닥에서부터 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Elephants Don't Play Chess 논문에서 로봇 공학 연구자인 Rodney Brooks는 직접적으로 물리적 심볼 시스템 가설에 초점을 맞추었고 심복들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80년대와 90년대에 많은 cognitive 과학자들은 또한 사고방식의 심볼처리 모델을 거절하고 추론에 몸통은 필수적이라고 말했고 이러한 이론을 embodied mind이론이라고 불렀다.

 

- AI 2022 - 현재

지금보다 반세기는 더 오래된 AI의 분야는 마침내 가장 오래된 목표 중 몇 가지를 달성하였다. 이것은 비록 뒷받침 해주는 역할이었지만 기술 산업에 걸쳐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다. 몇 가지의 성공은 컴퓨터의 성능이 증가했기 때문이고 또 다른 몇 가지는 고립된 문제에 대해 집중하였고 높은 과학적 의무감으로 해 나갔기 때문에 해결되었다. 적어도 비즈니스 분야에서의 AI의 평판은 여전히 처음 같지 않다. 이 분야의 내에서는 1960년대 세계의 상상이던 인간 수준의 지능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몇 가지 합의를 하였다. 하위 파트에서 AI의 일부분을 도와주던 모든 요소들은 특정 문제나 접근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졌다. 그 후, AI는 여태 해왔던 것보다 더욱 신중해졌고 더욱 성공적이었다. 또한 보안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인공지능의 보안 이슈로는 학습된 인공지능을 속일 수 있는 공격형태인 Poisoning Attack, Evasion Attack, 인공지능 모델 자체를 탈취할 수 있는 Model Extraction Attack, 학습된 모델에서 데이터를 추출해내는 Inversion Attack 등이 있다.

댓글